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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무렵 외원 예문 몇 가지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예를 들면 서머싯 몸의 '모든 면도기에는 철학이 있다'란 구절. 앞뒤로 꽤 긴문장이 있었지만 그것들은 다 잊었다. 요컨데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매일 계속하다보면 절로 철학이 생겨난다는 뜻이다.
여자식으로 변형하면 '모든 립스틱에는 철학이 있다'는 얘기다.
나는 고등학생 시절 몸의 이 문장을 읽고 '으음, 인생이란 그런 것인가'하고 꽤나 순진하게 감동하고 말았다. 그리고 어른이 되어 바의 카운터에서 일하는 동안에도,'모든 온더록스에는 철학이 있다'고 생각하면서 팔 년간 매일 온더록스를 만들었다.
그런데 정말 온더록스에 철학이 있을까. 그야 당연히 있다. 물론 세상에는 맛있는 온더록스와 맛없는 온더록스가 있을 텐데, 맛있는 온더록스에는 확실한 철학이 있다. 그까짓 온더록스, 얼음에다 위스키를 갖가 붓기만 하면 끝 아니냐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으나, 얼음을 깨는 방법 하나로도 온더록스의 품위나 맛이 영 달라진다.
큰 얼음이냐 조그만 얼음이냐에 따라 녹는 속도가 다르다. 큰 얼음만 사용하면 투박해서 멋이 없고, 그렇다고 작은 얼음이 너무 많으면 금방 녹아 물이 되어 버린다. 그러니까 대 중 소의 얼음을 조화롭게 섞고, 그 위에다 위스키를 따른다. 그러면 위스키가 잔 안에서 호박색의 작은 소용돌이를 일으킨다. 단, 그런 경지에 이르기까지는 상당한 세월이 소요된디ㅏ.
그렇게 터득한 사소한 철학은 언젠가는 나름대로 제법 쓸모가 있을 것 같다.
- 코끼리 공장의 해피엔드 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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