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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하루키 소확행10

무라카미하루키 - 돈만 내면 뭐든지 살 수 있다는 생각은 재미없다 낡은 레코드 수집은 어디까지나 내 취미이고, 취미라는 건 스스로 규칙을 만들어 하는 게임과 비슷하다. 돈만 내면 뭐든지 살 수 있다고 생각하면 그다지 재미가 없다.그러니까 가령 시세보다 싸다고 다른 사람들이 말하더라도 자신이 이건 그래도 값이 약간 비싼걸, 하고 생각한다면 그건 당연히 비싼 것이다. 그래서 깊이 고민한 끝에 결국 사지 않기로 했다. .... 그러나 인생이라는 것은 그렇게 나쁜 일만 있는 건 아니다. 그로부터 3년 뒤에 나는 보스턴의 한 중고 가게에서 같은 레코드를 2달러 99센트에 파는 걸 발견했다. 레코드판의 질은 반짝반짝하는 신품과 똑같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이것을 손에 넣었을 때는 정말로 기뻤다. 손이 떨릴 정도는 아닐지라도, 나도 모르게 싱글벙글 웃.. 2018. 12. 25.
무라카미하루키 - 피서지에서 책을 고르는 즐거움 피서지의 서점에 들어가서 몇 시간을 들여 천천히 책을 고르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그런 서점에서는 대게 클래식 음악 전문의 FM 방송이 낮게 흐르고 있고, 구석에 있는 의자 위에 커다란 고양이가 낮잠을 자고 있고, 안경을 쓴 여성이 가게를 지키고 있다.그곳에 들어가면 그녀는 생긋이 미소를 지으며 뜸을 들이다가 느릿한 발음으로, "안녕하세요?"하고 인사한다. 내가 고양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 "그 고양이 이름은 xxx라고 해요.:하고 가르쳐 주기도 한다.모든 것이 작년 여름부터 계속되고 있는 환영처럼 보인다.꽤 쓸 만한 풍경이다. 하루키 일상의 여백 85 2018. 11. 29.
무라카미하루키 - 굿 하우스 키핑 결혼하고 이 년째쯤 되던 해의 일인데, 나는 한 반 년 정도 '주부(하우스 허즈번드)' 역할을 했더랬다. 그때는 이렇다 할 느낌도 없이평범하게 하루하루를 보냈는데,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니 그 반 년이 내 인생에서 가장 멋진 시절이었던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하긴 그 당시엔 딱히 '주부'가 되고자 소망한 것도 아니고, 우연찮은 사소한 인연으로 마누라는 일을 하러 밖으로 나가고, 내가 집에 남아 있게 되었을 뿐이다. 이렇저럭 벌써 십이삼 년, 존 레논이 '주부'가 된 일로 화제를 불러일으키기 전의 일이다. '주부'의 일상은 '주부'의 일상과 다를바 없이 평온하다. 우선 아침 일곱 시에 일어나 아침 식사 준비를 하고, 마누라를 일터로 보내고 뒷정리를 한다. 싱크대 속에 있는 그릇들을 재빨리 씻어 놓는 것은 물.. 2018. 11. 8.
무라카미하루키 - 일기, 혹은 그런 류에 대하여 나는 애당초 편지를 위시한 등등의 글 쓰기를 싫어하는 사람이라 스물아홉 살이 되어 소설을 쓰기 시작하기 전까지 글이라곤 거의 써 본 일이 없지만, 일기만은 불현듯 생각나면 단속적으로 썼다. 반 달쯤 쓰고는 넉 달을 쉬고, 석 달을 쓰고는 또 두 달을 쉬는 그런 리듬으로, 그런 게 지금까지 토막토막 이어지고 있다. 하기사 내가 쓰고 있는 것은 정확하게 말하면 '일기'가 아니라, '일지'이다. 아침 몇 시에 일어남, 날씨, 무얼 먹음, 누굴 만남, 얼마만큼 일을 했음 하는 사실을 메모하는 것뿐으로, 그 이상의 것은 전혀 안 쓴다. 심리 묘사라든가, 창작을 위한 노트라든가, 사회적 사건에 대한 성찰이라든가 하는 종류의 것은 백 퍼센트 없다. 그러니까 사후 일기가 발견된다 해도 출판되는 가능성은 전무할 것이다... 2018. 11. 5.
무라카미 하루키 - 레스토랑에서 책 읽기 시내에서 문득 책이 읽고 싶어질 때는 오후의 레스토랑이 최고다. 조용하고, 밝고, 한적하고, 푹신한 의자가 있는 레스토랑을 한 군데 확보해둔다. 와인과 가벼운 전체만 주문해도 점원이 얼굴을 찡그리지 않는 친절한 곳이 좋다. 시내에 나갔다가 시간이 남으면 서점에서 책을 한 권 사들고 그 레스토랑에 들어가 화이트 와인을 홀짝홀짝 마시며 페이지를 넘긴다. 그러면 아주 호사스럽고 한가로운 기분이 든다. 체홉 같은 작가의 책을 읽으면 무척 조화로운 풍경이 될 것 같다. 생활 속의 이런 소소한 요령은 누가 일부러 가르쳐주는 것도 아니고, 정보지에 실려 있지도 않다. 스스로 시행착오를 거듭하면서 터득하는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는 도쿄에 사나 그린란드의 설원에 사나 별 차이가 없을지도 모르겠네요. 코끼리공장의 해.. 2018. 11. 3.
무라카미하루키 - 셰이빙크림 이야기 그런 식으로 택시 요금을 지불한 것까지는 좋은데, 그후로는 온종일 셰이빙 크림을 들고 거리를 어슬렁거려야 하는 처지에 놓인다. 좀 이상한 얘기지만, 셰이빙 크림을 한 손에 들고 걷다보면 거리가 여느 때와 좀 다르게 보인다. 권총을 주머니에 쑤셔 넣고 걸으면 거리가 여느 때와 전혀 다르게 보인다는 얘기를 어딘가에서 읽은 적이 있는데, 그 정도는 아니지만 셰이빙 크림 하나로도 조금은 다르게 느껴진다. 바에 들어가 카운터 위에다 셰이빙 크림이 든 봉투를 슬명시 올려놓고 위스키를 즐기는 것도 상당히 멋스럽다. 그게 어디에 무슨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지만. 외국에 나가면 제일 먼저 그 지역 슈퍼마켓에 뛰어들어가 셰이빙 크림을 산다. 그리고 그것을 호텔의 욕실 선반에 면도기와 칫솔과 함께 나란히 늘어놓는다. 그러면.. 2018. 11. 2.
무라카미하루키 - 건강에 대하여 '첫째가 건강, 둘째는 재능'이 나의 좌우명이다. 조만간 안자이미즈마루 화백에게 그렇게 써 달라고 하여 족자를 만들어 도코노마에 걸어 두려고 생각하고 있을 정도이다. 글자 밑에 쇠로 된 아령 그림 같은 게 들어 있다면 좋겠는데 하고 생각한다. 어째서 '첫째가 건강'이고 '둘째가 재능'인가 하면, 단순하게 생각해서 건강이 재능을 환기시키는 일은 있어도, 재능이 건강을 환기시킬 가능성은 전무하기 때문이다. 물론 건강하기만 하면 재능이 졸졸 따라온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장기간에 걸쳐 노력이나 집중력을 최고의 상태로 유지시키려고 하면 아무래도 체력이 필요하고, 노력이나 집중력을 유지함으로써 재능을 중식시켜 나가는 일은 불가능한 게 아니다. 그래서 '첫째가 건강'이고 '둘째는 재능'인 것이다.하기야 이런 사고.. 2018. 11. 1.
독서용비행기 요즘 별로 책을 읽지 않게 되었다는 글을 쓴지 얼마 되지도 않아 이런 말을 하는 건 아무래도 좀 쑥스럽지만, 요 한달동안 꽤 많은 책을 읽었다. ... 어째서 갑자기 책을 읽기 시작했는가 하면, 요 한 달 동안 전철이나 비행기를 탈 기회가 꽤 많았기 때문이다. 요컨대 나는 이동이 많으면 책을 많이 읽게 되는 것이다. 우선 남반구 항로의 비행기로 도쿄-아테네 사이를 왕복했으므로 그 동안 책을 세 권 읽었다. 존 어빙의 과 닥터로의 와 존 고어즈의 다. 남반구 항로의 유럽행 비행기는 몸도 마음도 위장도 죄다 기진맥진하게 되지만, 적어도 책만큼은 잘 읽힌다. ... 비행기 안에서 독서벽이 붙어 버렸는지 귀국한 뒤에도 일하는 짬짬이 시간만 나면 핀천의 을 읽었다. 지금까지 몇 번이나 영어로 읽어보려고 시도하다 .. 2018. 10. 30.
음식의 좋고 싫고가 인생의 갈림길 나는 꽤 음식을 가리는 사람이다. 생선과 야채와 술에 관한 한은 거의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좋고 싫은 게 없지만, 육류는 쇠고기만 먹고, 조개류는 굴을 빼고는 입에도 대지 않는다. 그리고 중국 요리는 아예 못 먹는다. 그러니까 대게 생선과 야채를 중심으로 담백한 음식을 먹으면서 그럭저럭 하루를 보내고 있다. 곤약이라든가 녹미채, 두부 따위. 그러고 보니 완전 노인식이군요. 그것은. 때때로 나 자신도 이상하다고 생각하지만, 무엇은 좋고 무엇은 싫다는 판단 기준은 대체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어째서 굴은 먹을 수 있는데 대합은 못 먹는단 말인가? 굴과 대합이 본질적으로 도대체 어떻게 다르단 말인가? 그런 문제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알 수가 없어서, 결국 '운명'이라는 한마디로 결론을 내릴 수 밖에 없다. 나.. 2018. 10. 14.
내가 세번이나 본 <스타워즈> 자주 생각하는 건데, 큰 원숭이 츄바카라고 하는 캐릭터는 정말로 귀엽다. 어디가 귀여우냐 하면, 츄바카는 쓸데없는 말은 하지 않는다. '무고오' 라든가, '아구' 라든가 하는 정도로 대개의 용건을 해결해 버린다. 나도 그 정도의 단어로 볼일을 끝내고, 그 나머지 시간은 제국군과 이따금 공중전을 벌이면서 인생을 보낼 수 있으면 얼마나 행복할까, 하고 생각한다. 츄바카의 얼굴 모습이 1편과 3편에서 상당히 다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1편에서는 헤어스타일이 납작한 헬스 엔젤스 풍의 올백이었다면, 3편에서는 조금 더 덥수룩해지고, 모습이 약간은 어른스러워졌다. 나로서는 새로운 호인풍의 츄바카보다는, 무슨 일만 있으면 바로 완력을 휘두르고 싶어하는 흉폭한 옛날의 츄바카 쪽이 더 마음에 든다. 258 2018. 10.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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