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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애당초 편지를 위시한 등등의 글 쓰기를 싫어하는 사람이라 스물아홉 살이 되어 소설을 쓰기 시작하기 전까지 글이라곤 거의 써 본 일이 없지만, 일기만은 불현듯 생각나면 단속적으로 썼다. 반 달쯤 쓰고는 넉 달을 쉬고, 석 달을 쓰고는 또 두 달을 쉬는 그런 리듬으로, 그런 게 지금까지 토막토막 이어지고 있다.
하기사 내가 쓰고 있는 것은 정확하게 말하면 '일기'가 아니라, '일지'이다. 아침 몇 시에 일어남, 날씨, 무얼 먹음, 누굴 만남, 얼마만큼 일을 했음 하는 사실을 메모하는 것뿐으로, 그 이상의 것은 전혀 안 쓴다. 심리 묘사라든가, 창작을 위한 노트라든가, 사회적 사건에 대한 성찰이라든가 하는 종류의 것은 백 퍼센트 없다. 그러니까 사후 일기가 발견된다 해도 출판되는 가능성은 전무할 것이다.
보십시오,
아침 6시 기상. 한 시간 달리기.
아침 식사 -> 붕장어 차즈께.
오전 중. 소설 7매.
메밀국수 -> 점심식사
오후. 소설 4매 <주간 아사히> H 씨로부터 전화(3시).
저녁 식사 -> 새우 고로케, 야채샐러드, 맥주 2병.
오후 10시 취침. 평화로웠던 하루.
이런 기술이 하염없이 계속되는 평화롭고 지루한 일지를 누군가가 즐거이 읽어주리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잖습니까,
그야 나 역시,
무라카미 하루키 수필집 2, 세라복을 입은 연필 - 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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