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그나저나, 제가 문장을 쓰는 기본 방침이 딱 두 가지라는 이야기는 했던가요?
- 아뇨, 알려주세요.
무라카미 말이죠, 문장을 어떻게 쓰는가 하는 규범은 제 생각에 기본적으로 두 가지뿐이에요. 하나는 고리키의 [밑바닥에서]에서 거지와 순례자의 대화. "내 말 듣고 있는 거야?"하고 한 사람이 말하니까, 다른 사람이 "나 귀머거리 아니야"라고 답해요. 지금은 거지니 귀머거리니 하는 차별용어를 쓰면 안 되지만 그 시절에는 아니었어요. 전 이 책을 학창시절에 읽었는데, 보통 같으면 "내 말 듣고 있는거야?" "듣고 있어"로 끝날 대화죠. 그런데 그러면 드라마가 안 되는 겁니다. "귀머거리 아니야"라고 대답하니까 주고받는 말 속에 역동감이 생겨요. 단순하지만 아주 중요한 기본입니다. 그런데 이것도 못하는 작가가 세상에는 많거든요. 저는 항상 그 사실을 의식합니다.
- (웃음)
무라카미 또하나는 비유, 챈들러가 쓴 비유 중에 "내가 잠 못 이루는 밤은 뚱뚱한 우편배달부만큼 드물다"라는 게 있어요. 예전에도 몇 번 예로 든 문장인데, 만약 "내가 잠 못 이루는 밤은 드물다"라고만 하면 독자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죠. 예사롭게 획 읽고 지나갑니다. 그런데 "내가 잠 못 이루는 밤은 뚱뚱한 우편배달부만큼 드물다"하면 '호오!' 싶잖아요. 그러고 보니 뚱뚱한 우편배달부는 복 적 없는데, 하고, 그게 살아 있는 문장입니다. 이렇게 반응이 생겨나고, 움직임이 생겨나죠. "귀머거리 아니야"와 "뚱뚱한 우편배달부", 이 두가지가 제 글쓰기 모델입니다. 그 요령만 알면 제법 좋은 문장을 쓸 수 있을 거에요.
수리부엉이는 황혼에 날아오른다 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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