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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하루키 글쓰기

무라카미하루키 - 소설을 쓰는 방법

by 하루키팬 2018. 1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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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음, 제 경우 소설의 아이디어 같은 걸 적어두는 일은 별로 없어요. 손을 움직여 글을 쓰면서 생각하는 타입이라, 일정 분량 이상의 글을 쓰는 작업이 중요합니다. 일단 한 덩어리의 글을 써놓고, 조금씩 손대며 고쳐나가고, 그사이 내 안에서 무언가가 자동으로 움직이기 시작하는...... 그런 걸 기다리는데, 여기에도 역시 시간이 필요해요. 써놓고 한두달 지나면 소설이 되느냐 하면, 그건 아니거든요. 아무래도 반년에서 일 년, 일 년에서 이 년의 세월이 필요합니다.

그러니까 [기사단장 죽이기] 별개의 세 요소가 스타팅 포인트라 할 수 있어요. 도입부의 한 단락,'기사단장 죽이기'라는 제목, 또 뭐였더라? 아, [이세의 인연]을 모티브로 삼자는 것. 그 세 가지가 따로따로 있다가 하나로 연결되는 거죠. 세 친구가 우연히 한자리에 모이는 느낌인데, 그 자리에 오기까지는 제법 긴 시간이 필요해요. 그러니 제 경우, 장편소설은 거의 기다림의 작업입니다. 이 년쯤 기다려 쓰기 시작하고, 일 년이나 이 년을 들여 완성하죠. 쓰는 시간보다 기다리는 시간이 오히려 길어요. 서퍼가 앞바다에서 파도를 기다리는 것과 같아요.


- 그렇게 집필을 시작하면 하루 열 장은 꼭 쓰신다던데요. 무슨 일이 있어도. 어쨌거나 열 장은 써놓자고 스스로 정해놓는 거죠?


무라카미   뭐, 무슨 일이 있어도까지는 아니지만, 기본적으로는, 네.


- 아무것도 정하지 않고 쓰기 시작하면 무언가와 만난다. 결과적으로 그렇게 완성해나간다는 건 이해되는데, 예를 들어 오늘 쓰면서 그 '무언가'를 만날 수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잖아요. 아까의 표현을 빌리자면...... 친구와 만나지 못하는 날이라고 할까요. 그런 날도 반드시 열 장은 쓰시나요? 


무라카미   네. 일단 씁니다. 만약 친구가 와주지 않더라도 와줄 법한 환경을 만들어둬야죠. 저쪽에 방석도 좀 깔아놓고, 청소도 하고, 책상도 닦고, 차도 내려두고, 아무도 오지 않을 때는 그런 '밑준비'라도 해두는 겁니다. 아무도 안 오니까 오늘은 실컷 낮잠이나 자볼까. 이러지는 않아요. 전 소설에 대해서는 근면한 편이라서요.


- 그럼 '오늘은 이 부분을 써야 하는데, 어째 느낌이 안오는데' 하는 경우는......



무라카미   그냥 풍경 묘사 같은 거라도 해요(웃음). 뭐가 어찌됐건 열 장은 씁니다. 그러기로 정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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