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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전 일이지만, 이십대 초에 갓 결혼했을 무렵, 너무 돈이 없어서(그렇다기보다 사정상 빚을 많이 져서) 난로 한 대도 살수가 없었다.
그해 겨울은 도쿄 근교의 외풍이 파고드는 몹시 추운 단독에서 살고 있었다.
아침이면 부엌의 얼음이 땡땡 얼어붙었다.
우리는 고양이 두 마리를 키웠는데, 잘 때는 사람과 고양이가 서로를 꼭 끌어안고 온기를 나눴다.
당시에는 어찌 된 영문인지 우리집이 근처 고양이들의 커뮤니티센터 같은 장소가 되어 늘 불특정 다수의 고양이 손님이 우글거렸다. 그래서 그런 녀석들까지 끌어안고 사람 두명과 고양이 네다섯 마리가 뒤엉켜 잠드는 일도 있었다. 살아가기에 고달픈 나날이었지만, 그때 인간과 고양이들이 애써 자아내던 독특한 온기는 지금도 종종 생각난다.
그런 소설을 쓸 수 있다면, 하는 생각을 자주 한다.
캄캄하고 밖에서는 초겨울 찬바람이 매섭게 휘몰아치는 밤에 다 함께 서로의 체온을 나누는 소설.
어디까지가 제 온기고 어디부터가 다른 누군가의 온기인지 구별할 수 없는 소설.
어디까지가 자기의 꿈이고 어디부터가 다른 누군가의 꿈인지 경계를 잃어버리게 되는 소설.
그런 소설이 나에게는 '좋은 소설'의 절대적인 기준이 되었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그밖의 기준은 내게 별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잡문집 45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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